김종길, <귀로>

 

마음 내키는 대로 해도

규범을 넘지 않는다는 나이인데도,

집으로 돌아갈 때면 흔히 고개 드는 두려움.

 

오늘은 오후에 인사동 근방에서,

사람들을 만나 볼일을 보고

즐겁게 담소(談笑)도 나누었건만.

 

늙은 주제에 주책이나 떨지 않았는지,

허튼 수작이나 늘어놓지 않았는지,

남의 험담이나 하지 않았는지.

 

돌아오는 길에 이런 생각을 하고 있노라면

어느새 차는 삼양동 오르막길을 올라간다.

멀리 도봉(道峯)이 정면으로 시야에 들어온다.

 

지금은 초여름의 신록(新綠)을 허리에 둘렀지만

언제나 그렇듯 여윈 흰 이마를 높이 쳐들고,

조용히 저녁 해를 받고 있는 저 천연스런 산봉우리들 ----

 

그 산봉우리들 앞에

몸둘 바 없이 부끄럽고, 여지없이 왜소해지는 나의 초라한 몰골.

 

 

◇ 주제 : 일상적 삶에 대한 반성과 고고한 삶에 대한 지향

◇ 해제

  이 작품은 집에 가기 위해 삼양동 오르막길을 오르던 화자가 시야에 들어오는 도봉을 보면서 느끼는 일상적 삶에 대한 반성을 보여 주고 있다. '흰 이마를 높이 쳐들고' 있는 '천연스런 산봉우리들'을 보면서 화자는 지나온 길에 자신이 쏟아 냈던 말, 행동 등에 대해 부끄러움을 느낀다. 겸허하고 본연의 모습대로 살아가는 '도봉'이 화자에게는 고고한 질서이자 삶의 규범적 모습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 구성

 - 1연 : 귀갓길의 상념

- 2~3연 : 일상적 삶에 대한 반성

- 4~5연 : 고고한 도봉의 이미지

- 6연 : 도봉과 대비되는 초라한 화자의 모습

 

※  김종길(金宗吉, 1926년~ )

김종길.jpg

시인이며 영문학자. 경북 안동 출생으로, 1947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문〉이 입선되어 등단했다. 시집으로 《성탄제》(1969),《하회에서》(1977),《황사 현상》(1986) 등이 있다. 한국시인협회장과 고려대 교수를 역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