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가 햇빛 바른 바위 위에
└밝음의 요소
┌습한 바다에 다녀왔기에(바다에 다녀온 것은 토끼의 욕심 때문).
습한 간(肝)을 펴서 말리우자.
└양심과 자기 존엄성 회복
코카사스 산중에서 도망해 온 토끼처럼
└항거 의식.
둘러리를 빙빙 돌며 간(肝)을 지키자.
└양심과 자기 존엄성을 지키려는 다짐
▶간의 소중함 인식(1∼2연)
- 환상에서 현실로 귀환. 생명을 지키는 토끼
내가 오래 기르는 여윈 독수리야!
└육체적 자아 └정신적 자아
와서 뜯어 먹어라, 시름없이
너는 살찌고
└독수리
나는 여위어야지, 그러나
(간을 줄 수는 없다) └육체를 희생하더라도 정신을 살찌우겠다는 의지
▶자아에 대한 반성과 의지(3∼4연)
- 자아의 갈등과 자포자기. 내면적 시련과 고통
거북이야!
└일제. 나를 좀 먹는 무리.
┌도피처, 환상의 세계
다시는 용궁의 유혹에 안 떨어진다.
└양심을 지키겠다는 의지
┌속죄양 의식
프로메테우스 불쌍한 프로메테우스
└속죄양이 될 수밖에 없는 자신
불 도적한 죄로 목에 맷돌을 달고
끝없이 침전하는 프로메테우스.
▶희생의 의지, 속죄양 의식(5∼6연)
- 현실적 고난의 인고(忍苦). 희생적인 비극적인 인간상
-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1948)
◇ 감상의 초점
이 시는 두 개의 이질적인 동서양 설화를 결합하여 형상화하였다. 즉, 거북이의 꾐에 빠져 간(肝)을 잃을 뻔하였다가 기지(機智)를 발휘하여 목숨을 건진다는 <구토지설(龜兎之說)>과 인간을 위해 제우스를 속이고 불을 훔친 죄로 코카서스 산에 쇠사슬로 묶여, 날마다 낮에는 독수리에게 간을 쪼아 먹히나 밤에는 그의 간은 되살아나서 영원히 고통을 겪는다는 <프로메테우스의 신화>를 결합하여 우의적(寓意的)으로 표현한 시다. 이 시를 이해하기 위해서 '토끼, 독수리, 거북이, 간' 등의 원형적 이미지를 파악하도록 하자.
(윤동주의 다른 작품 대부분이 자아 성찰적이고 고백적인 어조로 되어 있어 소극적인 저항 의식을 담고 있는데 반해 이 시는 소극적인 현실 대응 방식에 대한 자책과 울분을 격정적인 어조로 표현하고 있어 다른 작품과 구별된다.)
◇ 어구풀이
간 : 인간의 실존적인 본질로서, 매일 쪼아 먹히면서도 새로 돋아 나는 '인간적 고통의 핵심'이다. 생명과 같은 인간의 양심, 존엄성. 훼손될 수 없는 소중한 자아
독수리 : 자신의 생명을 쪼아 내며 자아에게 아픔을 주는 내부의 예리한 의식을 상징한다. 나
의 본질, 고통 속에서 자아를 반성케 하는, 비극적 자아성찰의 표상. 내면적(정신적) 자아
용궁 : 자아가 경계해야 할 환상적이고 비현실적인 세계
프로메테우스 : 인간을 위해 죄 아닌 죄를 짓고 속죄양이 된 존재로서 시적 자아의 모습 (= 토끼)
토끼 : 궁지에 몰려서도 슬기롭게 자신의 간(양심)을 지킨 존재
바닷가 햇빛 바른∼간을 펴서 말리우자 : '간을 펴서 말리우자'는 것은 한때 유혹과 빠져
용궁에서 물에 젖어 버린 간을 이제 말리자고 하는 데서 화자의 지향하는 바를 알 수 있다. 습
한 상태는 부정적 이미지, 마른 상태는 긍정적 이미지로 쓰이고 있다.
코사사스 산중에서∼간을 지키자 : 말리는 데 그치지 않고 이제는 간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지켜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유혹의 빠져 간을 잃을 뻔하다 도망해 온 토끼처럼 간을 빙빙 돌
며 지키자는 의미이다.
내가 오래 기르던∼뜯어먹어라, 시름없이 : 설화와 신화가 만남으로 인해 원래의 의미에서
시의 의미로 변용(반전)되는 부분이다. 간을 지키자고 하고는 다시 그간을 뜯어먹으라고 한
다. 젖은 간을 말리는 순간, 토끼의 간은 프로메테우스의 간으로 바뀌고 있다. 불을 훔쳐 인간
에게 준 죄로 간을 독수리에게 쪼이며 살아야하는, 인류를 위해 자기 자신을 고통스럽게 희생
한 프로메테우스, 그가 추구한 것이 곧 화자의 지향점이라 할 수 있다.
너는 살찌고/나는 여위어야지, 그러나 : 암울한 현실 속에서 홀로 양심의 고통을 느끼면서
메말라가는 시인의 의식이 드러나 있다. 독수리가 정신적인 자아, '나'는 육체적 자아라 한다
면, 자신의 육체는 희생하더라도 정신을 살찌우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거북이야!∼유혹에 안 떨어진다 : 거북은 토끼를 유혹해 간을 빼앗으려는 부정적 존재로 다
시는 꾀임에 속아 넘어가지 않겠다는 자기 의지를 확인하고 있다. 용궁의 유혹에 빠진다는 것
은 자신의 생명과도 같은 양심을 저버리는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프로메테우스∼끝없이 침전하는 프로메테우스 : 용궁에서는 벗어났지만 프로메테우스처
럼 끝없는 고통속에 빠질 수밖에 없는, 자신을 둘러싼 운명과 현실을 안타까워하고 있다. 한
편, 불쌍하기는 하지만 프로메테우스처럼 자신도 인간(조국)을 위한 속죄양이 될 수밖에 없음
을 의미하는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 핵심정리
갈래 : 자유시, 서정시
율격 : 내재율
성격 : 상징적, 저항적, 우의적
심상 : 설화에서 취재한 원형적 이미지
어조 : 현실을 극복하려는 남성적 어조
표현 : ① 두 자아의 대비적 표현
② 설화와 신화의 결합
③ 화자의 이동에 따른 전개
구성 : ① 환상에서 현실로 귀환(1,2연)
- 양심과 존엄성 회복의 다짐(용궁에서 토끼가 잃어버릴 뻔했던 것에서 유추)
② 자아의 갈등과 자포자기(3,4연)
- 현실 타협(妥協)의 유혹
③ 현실적 유혹의 거부(5연)
- 용궁의 유혹으로 '간'을 내어 주는 것은 마치 양심을 버리는 것
④ 현실적 고난의 인고(忍苦) (6연)
제재 : 구토 설화와 프로메테우스 신화
주제 : 현실적 고난 극복의 의지
◇ 감상의 길잡이
이 시가 갖는 특이성은 동??서양의 두 고전-'토끼전'과 '프로메테우스 신화'를 혼합하여 썼다는 데에 있다. 두 고전을 차용한 이유는 '토끼전'에서는 지배층에 대한 피지배층의 항거를 나타내기 위함이고, '프로메테우스 신화'는 속죄양 의식을 나타내기 위함으로 간주된다.
토끼는 현실에 대해 회의하고, 현실이 아닌 다른 세계를 절실히 갈망한다. 그 계기를 마련해준 것이 자라이다. 자라에 의한 용궁의 제시는 매력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용궁에 가서 그는 비로소 도피처로 택한 용궁이 결코 바람직한 장소가 되지 못하며 자기가 살던 곳이 지상낙원이라는 중요한 사실을 깨닫는다. 그는 '발전적 인물'이 된 것이다. 그 '발전적 인물'이 되 토끼가 육지로 돌아와 우선적으로 행한 것 이 습한 간을 펴서 바닷가 바위 위에 말리는 것이었다. 이 행위는 빼앗길 뻔하였던 간의 소중함에 대한 재인식과 간이 있어야만 힘을 지녀 그가 사는 곳을 지키며 그들과 대처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 비롯된다.
1연은 이런 사실을 바탕으로 이해해야 한다.
2연에 이르러 '프로메테우스 신화'가 끼여든다. '토끼전'과 '프로메테우스 신화'가 교차될 수있는 것은 '간' 때문이다. 두 고전에서 '간'은 곧 힘을 의미한다.
3연에는 '나'라는 시적 자아가 등장한다. 그는 스스로 기른 독수리에게 자기의 간을 뜯어먹도록 요구한다. 여기서 독수리는 스스로에게 아픔을 주는 예리한 의식이다.
4연에는 '너'와 '나'가 등장한다. 여기서 '너'는 정신적 자아이고 '나'는 육체적 자아라 할 수 있다. 이것은 자신의 육체를 희생하더라도 자신의 의식은 예리하게 지키겠다는 뜻이다. 그러나 그것이 자신에 대한 전적인 포기는 아니다. 끝머리에 '그러나'가 이를 대변해 준다. '그러나'는 여위어 힘은 없지만 어느 누구에게도 예속되지 않겠다는 의지, 뜯어 먹히더라도 간을 내놓을 수 없다는 결의를 표명한 것이다.
5연에서 시적 화자는 실존의 문제를 제기한다. '다시는 용궁의 유혹에 안 떨어진다.'고 한 것은 존재의 본질을 이해한다는 뜻이다. 그것은 존재의 방법에 대한 깨달음이기도 하다. 이 시인은 자기 희생을 존재의 방법으로 삼았다. 그의 속죄양 의식은 이로부터 나온다.
6연에는 바로 속죄양 의식이 드러난다. 프로메테우스는 인류가 비참해질 뻔한 것을 구해 주고 자신은 그 죄로 바위에 묶여 매일같이 간이 쪼아 먹히는 고통을 당하는 인물이다. 그는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십자가의 고통을 지는 예수와도 같다. '목에 맷돌을 달고 / 끝없이 침전'한다는 것은 자기 희생 정신의 발로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이 시인은 자기 동일성으로 프로메테우스를 택한 것이다. -
이 시는 윤동주의 작품으로 두 개의 이질적인 설화 - 프로메테우스, 구토 설화 (龜兎說話) - 가 형상화되어 있다. 이 둘은 공통 요소를 중심으로 결합하는데, 시 전체에 의미 깊은 상황을 설정하는 서사적 골격은 토끼 설화에 의해 마련된다. 두루 알려진 바와 같이 토끼 설화는 자라의 유혹에 넘어가 죽을 뻔한 토끼가 기지로 목숨을 건지는 이야기다.
인간적인 의미의 차원에서 볼 때, 토끼는 현실의 고난 때문에 환상에 잠기는 인간의 전형이다. 그는 자기가 처한 현실의 억압과 괴로움으로부터 벗어나서 가상하던 이상적인 삶을 누리기 위해 용궁을 찾아갔으나 오히려 삶의 포기를 요구받는다. 결국 그의 꿈은 한낱 환상이었음을 깨닫고, 토끼는 자신의 설 곳이 갈등의 현실뿐임을 확인하게 된다. 이런 점에서 토끼는 허약한 존재에서 삶의 현실을 깨달은 보다 강한 자신으로 발전하는 발전적 인물이다.
'간'에 설정된 극적 상황은 토끼가 지상에 돌아온 장면이다. 1연에 보이는 바 토끼 설화의 맥락에 프로메테우스 이야기가 접속된다. 이에 따라 '간'은 의미 심장한 상징이 된다. 코카서스에서의 간은 매일 쪼아 먹히면서도 끊임없이 새로 돋아나는 '인간적 고통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간을 지키는 이유는 무엇인가? 고통을 피하기 위해서? 아니다. 여기서부터 윤동주의 뛰어난 시적 변용력은 설화적 맥락을 넘어선다. 화자(토끼로 형상화된 자신)는 '독수리'를 스스로 길렀으며, 자기 간을 뜯어먹도록 요구한다. 이 때 '독수리'는 화자의 밖에 있는 존재가 아니라 자기의 생명(肝)을 쪼아 내며 스스로에게 아픔을 주는 자아의 예리한 의식이다. 자신의 삶을 쪼아 내는 자아의 의식 활동이 치열한 아픔을 주지만, 그는 안식이 아니라 고통을 선택한다. 오히려 고통을 주는 반성적 의식이 살찔 것을 기대하는 것이다.
여기서 다시 토끼 설화의 맥락이 의미 깊게 되살아난다. '용궁'이라는 환상적 세계의 평화를 거부하는 것이 그것이다. 그는 어떤 초월적 희망도 인간을 구제할 수 없는 환상에 불과함을 깨닫고 '지금 - 여기'에서의 고통스런 자기 응시와 긴장을 선택한다. 이러한 의지는 고유한 의미에 있어서 비극적인 의지이며 마지막 연에서 우리는 이를 확인하게 된다.
※ 윤동주 [尹東柱, 1917.12.30~1945.2.16]
만주 북간도의 명동촌(明東村)에서 태어났으며, 기독교인인 할아버지의 영향을 받았다. 본관은 파평(坡平)이며, 아버지는 윤영석(尹永錫), 어머니는 김룡(金龍)이다. 1931년(14세)에 명동(明東)소학교를 졸업하고, 한 때 중국인 관립학교인 대랍자(大拉子) 학교를 다니다 가족이 용정으로 이사하자 용정에 있는 은진(恩眞)중학교에 입학하였다(1933).
1935년에 평양의 숭실(崇實)중학교로 전학하였으나, 학교에 신사참배 문제가 발생하여 폐쇄당하고 말았다. 다시 용정에 있는 광명(光明)학원의 중학부로 편입하여 거기서 졸업하였다. 1941년에는 서울의 연희전문학교(延禧專門學校) 문과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에 있는 릿교[立敎]대학 영문과에 입학하였다가(1942), 다시 도시샤대학[同志社大學] 영문과로 옮겼다(1942). 학업 도중 귀향하려던 시점에 항일운동을 했다는 혐의로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1943. 7), 2년형을 선고받고 후쿠오카(福岡) 형무소에서 복역하였다. 그러나 복역중 건강이 악화되어 1945년 2월에 생을 마치고 말았다. 유해는 그의 고향인 연길 용정(龍井)에 묻혔다.
28세의 젊은 나이에 타계하고 말았으나, 그의 생은 인생과 조국의 아픔에 고뇌하는 심오한 시인이었다. 그의 동생 윤일주(尹一柱)와 당숙인 윤영춘(尹永春)도 시인이었다. 그의 시집은 본인이 직접 발간하지 못하고, 그의 사후 동료나 후배들에 의해 간행되었다. 그의 초간 시집은 하숙집 친구로 함께 지냈던 정병욱(鄭炳昱)이 자필본을 보관하고 있다가 발간하였고, 초간 시집에는 그의 친구 시인인 유령(柳玲)이 추모시를 선사하였다.
윤동주는 15세 때부터 시를 쓰기 시작하였는데, 처녀작은 <삶과 죽음> <초한대>이다. 발표된 작품으로는 만주의 연길(延吉)에서 발간된 《가톨릭 소년(少年)》지에 실린 동시 <병아리>(1936. 11), <빗자루>(1936. 12), <오줌싸개 지도>(1937. 1), <무얼 먹구사나>(1937. 3), <거짓부리>(1937. 10) 등이 있다. 연희전문학교에 다닐 때에는 《조선일보》에 발표한 산문 <달을 쏘다>, 교지 《문우(文友)》지에 게재된 <자화상>, <새로운 길>이 있다. 그리고 그의 유작(遺作)인 <쉽게 쓰여진 시>가 사후에 《경향신문》에 게재되기도 하였다(1946).
그의 절정기에 쓰여진 작품들이 1941년 연희전문학교를 졸업하던 해에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라는 제목으로 발간하려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그의 자필 유작 3부와 다른 작품들을 모아 친구 정병욱과 동생 윤일주에 의해 사후에 그의 뜻대로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라는 제목으로 정음사(正音社)에서 출간되었다(1948).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는 그의 대표작으로 그의 인간됨과 사상을 반영하는 해맑은 시로 평가받고 있다.
그의 짧은 생애에 쓰인 시는 어린 청소년기의 시와 성년이 된 후의 후기 시로 구분해 볼 수 있다. 청소년기에 쓴 시는 암울한 분위기를 담고 있으면서 대체로 유년기적 평화를 지향하는 현실 분위기의 시가 많다. <겨울> <버선본> <조개껍질> <햇빛 바람> 등이 이에 속한다. 후기인 연희전문학교 시절에 쓴 시는 성인으로서 자아성찰의 철학적 감각이 강하고, 한편 일제 강점기의 민족의 암울한 역사성을 담은 깊이 있는 시가 대종을 이룬다. <서시> <자화상> <또 다른 고향> <별 헤는 밤> <쉽게 쓰여진 시> 등이 대표적인 그의 후기 작품이다. 특히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는 그의 대표시로서, 어두운 시대에 깊은 우수 속에서도 티없이 순수한 인생을 살아가려는 그의 내면 세계를 표현한 것이다. 그의 시비가 연세대학교 교정에 세워졌다(1968).
※ 참고자료
1. 윤동주의 작품세계
윤동주는 일제 강점기 지식인으로서 겪어야 했던 정신적 고통을 섬세한 서정과 투명한 시심으로 노래한 시인이다. 그의 시의 특성은 고요한 내면 세계에 대한 응시를 순결한 정신성과 준열한 삶의 결의로 발전시킨 데 있다. 초기 동시는 일상생활에 대한 애정 어린 관찰과 화해의 세계를 구축하며, 산문을 통해 청년기의 내적 고뇌를 표현한다. 그의 시가 추구한 핵심적 문제는 현실적 존재의 슬픔이 어디로부터 나온 것인가에 대한 끊임없는 탐구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이 비록 소극적이고 자책적이며, 어떤 경우 자기 분열의 상태까지 이르기도 하지만, 윤동주의 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음을 가치가 있다. 그의 생애를 마감할 무렵인 일본 유학 시절의 시는 비로소 윤동주의 저항 시인으로서의 평가를 가능하게 해 준다. 그의 시는 근본적으로 그의 생애의 흐름과 일치하며 발전한다. 즉 개인적 자아 성찰에서 역사와 민족의 현실에 대한 성찰로 인식을 확대하는 것이다. 민족의 해방을 기다리며 자신의 부끄럼 없는 삶을 위해 죽을 때까지 잃지 않은 시인으로서 그의 시는 일제 강점기의 종말에 대한 희생적 예언으로서 자리잡고 있다. 여기에는 그의 시세계의 정신적 기반으로서 기독교적인 원죄 의식과 종말관이 뒷받침되기도 한다.
2. '부끄러움'의 미학
윤동주는 식민지 지식인의 정신적. 윤리적 고통을 섬세한 서정과 투명한 시심(詩心)으로 노래하였다. 그의 시에는 절박한 시대 상황 속에서 순교자적 신앙의 길을 선택한 한 청년의 끝없는 자기 성찰의 자세가 반영되어 있다. 이와 같은 자기 성찰은 항상'부끄러움'을 수반한다. 이'부끄러움'의 감정은 현실적인 문맥에서 이해하자면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행동성의 결여에 대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렇게만 이해하는 것은 그의 시를 단순화시키는 것이 된다. 왜냐 하면,그의'부끄러움'은 좀더 근원적인 것, 말하자면 절대적인 윤리의 표상인'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소망하면서 부단히 자신의 삶을 채찍질하도록 만드는 그런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부끄러움'은 삶과 시를 지탱해 주는 근원적인 동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삶의 계기마다, 그리고 그의 시마다 가가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면서'십자가' 같은 시에서 볼 수 있는 순결한 순교자 의식으로 수렴된다. 그런 의미에서 그의'부끄러움'을 이해하는 것은 그의 시가 지닌 아름다움과 그의 삶이 지닌 투명한 아름다움을 이해하는 관건이 된다고 할 수 있다.
3. 구토지설(龜兎之說)
신라 선덕왕 11년(642)에 백제는 신라를 치고, 김춘추의 딸과 사위 품석을 죽였다. 이를 복수하기 위해 춘추는 바로 그 해 고구려에 청병(請兵)하러 갔다가 오히려 첩자라는 오인을 받고 옥에 갇혔다.
고구려 왕은 다음과 같은 무리한 질문을 하여 춘추가 대답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마목현과 죽령은 본래 우리 나라 땅이니 우리에게 돌려 주지 않으면 돌아갈 수가 없다"고 하니, 춘추는,"신하로서 마음대로 하지 못합니다."고 하니 이에 옥에 가두었다.
▶구토지설(선도해의 이야기)
옛날에 동해 용왕의 딸이 병이 들어 앓고 있었다. 의원의 말이 토끼의 간을 얻어서 약을 지어 먹으면 능히 나을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바다 속에는 토끼가 없으므로 어떻게 할 도리가 없었다.
▶토끼를 구함-발단
이 때 한 거북이가 용왕에게 아뢰기를,
"내가 능히 토끼의 간을 얻어 올 것입니다."하고, 드디어 육지로 올라가서 토끼를 만나 말하기를,
"바다 속에 한 섬이 있는데, 샘물이 맑아 돌도 깨끗하고, 숲이 우거져 좋은 과일도 많이 열리고, 춥지도 덥지도 않고, 매나 독수리 같은 것들도 감히 침범할 수 없는 곳이다. 만약, 그 곳으로 갈 것 같으면 아무런 근심도 없을 것이다."하고 꾀어서는, 드디어 토끼를 등 뒤에 업고 바다에 떠서 한 이삼 리쯤 가게 되었다.
▶거북이, 토끼를 유인하여 용궁으로 향함-전개
이 때 거북은 토끼를 돌아보며 말하기를,
"지금 용왕의 따님이 병이 들어 앓고 있는데, 꼭 토끼의 간을 약으로 써야만 낫겠다고 하는 까닭으로 내가 수고스러움을 무릅쓰고 너글 업고 가는 것이다."하니, 토끼는 이 말을 듣고 말하기를,
"아아 그런가, 나는 신명(神明)의 후예로서 능히 오장(五臟)을 꺼내어 깨끗이 씻어 가지고 이를 다시 넣을 수 있다. 그런데 요사이 마침 마음에 근심스러운 일이 생겨서 간을 꺼내어 깨끗하게 씻어서 잠시 동안 바윗돌 밑에 두었는데, 너의 좋다는 말만 듣고 오느라고 그만 간을 그대로 두고 왔다. 내 간은 아직 그 곳에 있는데, 다시 돌아가서 간을 가지고 돌아오지 않으면, 어찌 네가 구하려는 간을 가지고 갈 수 있겠는가. 나는 비록 간이 없어도 살 수가 있으니, 그러면 어찌 둘이 다 좋은 일이 아니겠는가."하니, 거북이는 이 말을 그대로 믿고 도로 육지로 올라왔다.
▶간을 꺼내어 바위 밑에 두었다고 함-절정
토끼는 풀섶으로 뛰어 들어가면서 거북에게 말하기를,
"거북아, 너는 참으로 어리석구나. 어찌 간이 없이 사는 놈이 있겠느냐?" 하니, 거북이는 멋쩍어서 아무 말도 못하고 돌아갔다.
▶거북을 우롱하는 토끼-결말
춘추가 그 말을 듣고 그 뜻을 알게 되었다.
"고구려 왕에게 글월을 보내어 말하기를, 두 령(嶺)- 마목현과 죽령-은 본래 고구려의 땅입니다. 신이 귀국하면 왕께 청하여 돌려 드리겠습니다. 내 말을 못 믿으신다면 저 해를 두고 맹세하겠습니다."
하니 그제야 기뻐하였다.
춘추가 고구려에 돌아간 지 60일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자 유신은 국내의 용감한 장사 3천인을 뽑아 놓고 고구려를 칠 채비를 차리고 왕에게 보고했다.
이때 고구려의 첩자인 중 덕창(德昌)이란 이가 이 일을 고구려왕에게 보고 하니 춘추를 돌려 보내지 않을 수 없어 대우하여 보냈다.
춘추가 국경을 넘어서자 전송하는 사람에게 말하길,
"내가 백제에 대한 원한을 풀려고 여기 와서 군사를 요청하였던 것인데, 대왕은 이를 허락하지 않고, 도리어 토지를 구하니, 이것은 신하로서 마음대로 할 일이 아니다. 전번 대왕에게 글을 보낸 것은 죽음을 면하려 한 것이다."하였다.
[줄거리]
옛날 동해 용왕의 딸이 병들어 앓고 있었다. 의원이 말하기를 토끼의 간을 구해서 약을 지어 먹으면 낳는다고 하였다. 그러나 바다 가운데 토끼가 없으므로 어떻게 할 도리가 없었다. 이때 한 거북이 용왕께 자신이 구해오겠노라고 아뢰었다. 거북은 마침내 육지에 올라 토끼에게 말하기를 "바다 가운데 한 섬이 있고 그곳에는 맑은 샘과 맛있는 과일이 많고 날씨도 적당하며 매나 독수리들도 없다."고 하였다. 그리고는 한 2, 3리 헤엄쳐 가다가 거북이 토끼를 돌아보며 잡아가는 진짜 사정을 이야기하였다. 토끼는 말하기를 "나는 신령의 후예이므로 간을 내어 씻었다가 다시 넣곤 한다. 마침 그것을 내어서 바위 위에 말려두었다. 나는 간이 없어도 사는데 왜 진작 말하지 않았는냐 ?"고 했다. 거북은 토끼의 이 말을 믿고 토끼를 도로 업고 돌아서서 육지로 올라갔다. 토끼는 풀숲으로 뛰어들어가며 거북에게 말하기를 " 어리석구나. 이 거북아. 어찌 간 없이도 사는 놈이 있단 말이냐 ?" 하였다. 거북은 가련하게도 아무 말도 못하고 그대로 돌아갔다.
[핵심정리]
인도[본생경]<용원설화(龍猿說話)>→구토지설→수궁가(水宮歌 : 일명 토끼타령, 토별가)→별주부전(鼈主簿傳)→후에 신소설, 이해조 <토(兎)의 간(肝)>으로 이어짐
작자(편자) : 김부식
연대 : 미상
구성 : '발단-전개-절정-결말'의 4단 구성
성격 : 풍자적, 우화적, 교훈적
내용 : 우직한 성격의 거북과 간교한 토끼와의 지혜의 경쟁을 내용으로 한 우화.
제재 : 토끼와 거북이
주제 : 분수에 넘치는 행위에 대한 경계
의의 : ① 교훈성을 지닌 우화적 설화이다.
② 동물에 얽힌 우화로서 수궁가, 별주부전 등의 판소리나 소설의 근원 설화이다.
출전 : <삼국사기> 권 41 열전(列傳) '김유신조' - 고구려 선도해(先道解)가 김춘추(金春秋)에게 들려 준 설화
[감상의 길잡이]
이 설화는 토끼로 대표되는 평범한 인물의 지혜로운 행동과 거북, 용왕으로 대표되는 지배자의 강압과 무능함을 대비시켜 토끼의 생기발랄한 성격도 보여주고 있다. 이 이야기는 후대 판소리, 소설로도 전승된다. 이야기는 불경에도 나오며 일찍이 신라 김춘추가 고구려에 군사를 청하러 갔다가 옥에 갇혔을 때, 고구려의 신하인 선도해에게 뇌물을 주자 그가 탈출을 암시하며 춘추에게 알려준 이야기라고 한다.
4. 반역의 신 '프로메테우스'
프로메테우스는 라페토스와 클리멘의 아들이다. 그의 이름의 뜻은 '진보된 생각'이다. 그는 올림푸스의 초기 시절에 제우스를 위하여 싸웠으나 제우스를 진심으로 존경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제우스나 다른 올림푸스의 신들이 땅위의 인간들에게 관심이나 동정을 보이지 않는 것에 한탄스러워 했다.
프로메테우스는 제우스를 우습게 보는 듯한 행동을 하곤 했다. 한 번은 좋은 고기를 담은 제물과 지방, 뼈만을 담은 제물 두 개를 가지고서 마치 좋은 고기의 제물 두개를 제우스에게 바치는 척 했다. 제우스는 그 사실을 알고서 프로메테우스를 벌하지는 않고 그에게 조심하라는 경고를 하였다.
하지만 프로메테우스는 이런 경고를 무시하고 지상의 인간들에게 많을 것들을 가져다 주고 또 가르쳐 주었다. 그는 나무를 다루는 법, 소를 키우는 법, 약을 다루는 법, 하늘이 보내는 신호를 보는 법, 배를 만드는 법, 항해법 등을 인간에게 전해주었다.
하지만 그가 인간들에게 제우스에게서 불을 훔쳐서 가져다 주었을 때 제우스는 더 이상 그를 용서하지 않았다. 제우스는 헤파이스토스에게 튼튼한 족쇄를 만들게 했고 높은 코카수스산에 프로메테우스를 묶어 두었다.
그는 먼 훗날 제우스의 아들 헤라클레스가 그를 자유롭게 해주기 전까지 매일같이 제우스가 보낸 독수리에게 심장을 쪼이는 고문을 당해야만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