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해방 이후의 현대시
해방 이후의 우리 시는 당시의 사회 상황이 전체적으로 그러하듯이 여러 갈래의 지향이 뒤얽힌 가운데 매우 착잡한 양상을 보였다. 더욱이 이 시기는 이념의 대립, 정치적 갈등이 치열한 때였기에 시에 있어서도 창작의 성과보다는 우리 시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인가를 둘러싼 논쟁이 거세게 일어났다. 이 당시에 나온 시로서 값진 성과라고 할 만한 것은 대개 해방 이전의 암흑기에 씌어져서 발표되지 못하고 있다가 출판된 것들이었다.
그와 같은 혼란이 대략 정리된 이후의 상황은 크게 두 갈래의 경향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그 하나는 1930년대의 순수시, 인생파, 자연파들의 뒤를 이은 비교적 온건한 경향이며, 다른 하나는 모더니즘의 뒤를 이은 실험적, 현대적 경향이다.
인생파, 자연파를 계승한 시적 흐름이 이 시기에 주류를 차지하게 된 이유는 간단하다. 그 중심이 되었던 서정주, 유치환, 조지훈, 박목월, 박두진, 김영랑, 신석정 등이 이무렵의 시단에서는 대표적인 중견 시인이 되어 가장 왕성한 활동을 벌였기 때문이다.
그들의 시는 해방 이전의 작품 세계에 비하여 상당한 개인적 변모를 보인 경우도 있으나 전체적으로 보아 기본적인 성격에는 변화가 없었다고 할 수 있다. 그들의 시는 1920년대 이래 우리에게 익숙한 가락과 소재를 다루었고, 그러한 시세계에 친근한 독자들에게 잘 정돈된 정서를 느끼게 해 주었다. 그 주제는 대개 삶의 의미, 자연의 질서, 사라져 가는 옛것에의 향수 등이 중심이 되었다.
이보다 규모가 작기는 했으나 1950년대 시단의 또 한 갈래 흐름을 이룬 것이 모더니즘이다. 50년대의 모더니즘은 시인들의 얼굴이 바뀌어 박인환, 김수영, 김경린, 송욱, 전영경, 김구용 등이 대표적인 인물로 활동하였다. 이들은 해방과 6‧25를 겪어 오는 과정에서 경험한 혼란, 불안, 상실감 등을 주로 노래하였고, 시의 방법에 있어서는 돌연한 이미지의 연결, 지적인 조작, 낯선 어휘와 사물들의 제시 등을 많이 사용하여 한편으로는 새로우면서도 적지 않게 실험적이고 난해한 시들을 썼다.
60년대에 접어들면서 젊은 시인들 중 일부는 이러한 경향들을 비판하고 우리의 현실 상황과 민중들의 생활에 충실한 시를 요구하였다. 이 현상은 외부적으로는 독재 정권의 억압을 무너뜨린 4‧19의 자극에 의한 것이고, 내부적으로는 50년대 시의 흐름이 그 나름의 전개 과정을 거쳐 반성을 필요로 하는 단계에 도달하였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러한 맥락에서 나타난 주장들 중에는 시의 사회 참여를 핵심적 명제로 제창한 것도 있었기 때문에 이들을 흔히 ‘참여파’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들이 중시한 점은 시인들이 사회 현실의 문제와 이웃들의 경험, 느낌 등을 절실하게 노래하여야 한다는 사회적 책임이었다. 그러한 입장에서 볼 때, 자기만의 고립된 세계에서 말들을 섬세하게 다듬는 데 골몰하거나, 혹은 난해한 실험적 방법들만을 추구하는 태도는 바람직하지 못한 것이었다.
이 경향의 대표적인 시인은 신동엽과 김수영이다. 김수영은 50년대까지는 전형적인 모더니스트였으나 60년대에 들어서면서 그 세계를 벗어나기 시작했고, 신동엽은 때묻지 않은 힘찬 목소리로 민족의 역사적 상황과 민중들의 생활을 노래하면서 새로운 시 세계를 전개해 나갔다. 다음의 예는 짤막한 대로 이 경향의 시인들이 가진 목소리와 주제를 짐작하게 해 줄 것이다.
껍데기는 가라.
사월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
동학년 곰나루의 그 아우성만 살고
껍데기는 가라.
〈신동엽, ‘껍데기는 가라’ 중에서〉
60년대 이후의 우리의 시에는 이 밖에도 여러 경향이 혹은 서로 결합하고 혹은 반발하기도 하면서 움직이고 있다. 그러나 그 자세한 내용은 이 자리에서 무리하게 단순화하여 개관하기보다 독자들 스스로가 시를 읽는 힘을 기르면서 부딪쳐보도록 하는 편이 좋으리라 생각한다. 시는 그것이 옛날의 것이든 오늘의 것이든 언제나 살아 있는 한 사람의 시인과 살아 있는 독자가 언어를 통해서 만나고 이야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 출처 : 김흥규, <한국 현대시의 이해와 감상> 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