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다양한 시적 조류 : 1930년대~1945년

1930년대에 와서 우리의 현대시는 더욱 다양한 조류로 분화되었다. 그 요인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내부적으로 본다면 그 간의 과정을 거쳐 오는 동안 우리 시에 축적된 경험과 관심이 그만큼 다채로운 가지로 뻗어 나갈 만하게 확대된 때문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한 가지 유의해 둘 점은 이 다양화의 흐름에서 시의 사회 의식과 현실 비판적 정신을 강조하는 경향은 제외되었다는 사실이다. 그 요인은 일제의 식민지 지배 정책에 있다. 그들은 중국 대륙을 침략하는 등 새로운 전쟁을 해 나가기 위해 한반도 안의 위험 요소를 미리 없애 두려 하였다. 이에 따라 사회적 탄압이 강화되어 일체의 이념적 경향을 띤 움직임이 제약 받으면서 시에도 그 영향이 미쳤던 것이다. 그리하여 1930년대의 우리 시단에서는 사회 현상보다는 개인의 문제, 도시 문명의 모습, 자연과 생명의 문제 등을 중요하게 여기는 조류들이 확대되어 갔다.


1) 순수시의 경향

그러한 흐름으로서 가장 먼저 나타난 것은 ꡔ시문학ꡕ(1931년 창간)을 중심으로 박용철, 김영랑, 신석정, 이하윤 등이 보인 ‘순수시’의 지향이다. 이 중에서 특히 중요한 인물이 박용철과 김영랑이다. 박용철은 그 자신이 적지 않은 시를 쓴 시인이기도 하나 작품보다는 순수시 운동을 뒷받침하는 이론에서 더 중요한 활동을 보였다. 그가 내세운 이론에 어울리는 작품으로서의 뛰어난 성과는 김영랑에 의해 이루어졌다. 김영랑은 우리말을 다루는 언어 감각에서 김소월 이후 가장 뛰어난 시인으로서, 섬세하고 은은한 서정시의 극치를 이루었다. 이로 인하여 ‘북도에 소월, 남도에 영랑’이라고 말하기도 한다.(김소월은 평안 북도, 김영랑은 전라 남도 출신이다.)

이들이 주창한 순수시란 시에서 일체의 이념적, 사회적 관심을 배제하고 오직 섬세한 언어의 아름다움과 그윽한 서정성을 추구하는 시라는 뜻이었다. 그 결과 지나치게 개인의 내면 세계에만 편중되면서 말을 다듬는 데에 빠졌다는 결함은 있으나, 이들에 의해 우리의 현대시가 시의 언어와 형식에서 좀더 세련된 차원으로 나아갔다는 점은 널리 인정되고 있다.



2) 모더니즘

1930년대 중엽에 들어서면 모더니즘이라는 이름으로 한데 묶이어 불리는 일련의 실험적 경향들이 나타난다. 모더니즘이란 우리말로 번역하면 ‘근대주의’ 또는 ‘현대주의’라고 할 수 있는 것으로, 현대의 도시 문명에서 나타나는 여러 현상과 경험을 종래보다 지적이고도 참신한 방법으로 그려 내고자 하는 경향들을 가리킨다. 시에 있어서 지성 내지 지적인 태도의 역할을 강조하는 주지주의, 이미지 특히 시각적 이미지를 무엇보다도 중요시하는 이미지즘, 현대인의 복잡한 심리 상태와 혼란된 경험을 파격한 실험적 수업으로 작품화하려 한 초현실주의‧다다이즘 등이 모두 모더니즘의 범위 안에 들어간다. 이들은 시를 대하는 방법과 태도에 적지 않은 차이가 있으나, 전체적으로 보아 서양의 현대시에 보이는 여러 새로운 경향을 흡수하면서 도시적 세계의 경험들을 그리려 했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가진다.

이중에서 이미지즘을 내세운 시를 쓴 인물로 김기림, 김광균, 장만영 등을 들 수 있다. 그들은 과거의 시가 감정과 음악성에 치우쳤다고 보고, 새로운 시는 지적인 태도와 시각성(즉, 이미지)을 중시해야 한다고 하였다. 다음의 시 한 편은 그 전형적인 예가 될 것이다.


길은 외줄기 꾸겨진 넥타이처럼 풀어져

일광(日光)의 폭포 속으로 사라지고

조그만 담배 연기를 내어 뿜으며

새로 두 시의 급행 열차가 들을 달린다.


〈김광균, ‘추일서정(秋日抒情)’, 1940) 중에서〉


초현실주의, 다다이즘 계열의 대표적 인물은 이상(李箱, 본명 김해경)이다. 그는 암담한 식민지 시대의 현실과 개인적 파탄을 겪으며 불행한 생애를 보냈는데, 「오감도」 등의 기이한 실험적 작품을 써서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다.


3) 생명파와 자연파

위에 말한 모더니즘 계열의 시들이 성행하는 동안 1930년대 후반 무렵부터 이와는 퍽 다른 경향을 가진 한 무리의 시인들이 등장하였다. 이들은 모더니스트 시인들이 도시와 현대 문명을 강조하고 주지적, 실험적 경향에 몰두함으로써 만들어 낸 메마른 시 세계를 좋아하지 않았다. 그 대신 이들은 고뇌로 가득찬 삶의 문제, 사람의 생명과 우주적 근원의 문제, 조화로운 자연의 모습 등을 중요한 주제로 삼았다. 이 중에서 ꡔ시인부락ꡕ(1936년 창간)이라는 동인지에 모인 서정주, 함형수 등과 ꡔ생리ꡕ라는 동인지의 유치환 등을 합쳐서 보통 ‘생명파’라 하고, 「청록집」이라는 시집을 함께 낸 조지훈, 박두진, 박목월을 ‘자연파’(또는 ‘청록파’)라고 부른다.

‘생명파(인생파)’는 그 이름이 암시하듯이 도시 문명보다는 생명의 깊은 충동과 삶의 의미, 고독, 고뇌 등의 주제를 주로 다루었다. 따라서 그들은 모더니즘 계열과 상반되는 입장을 취한 것은 물론, 박용철, 김영랑 등의 순수 서정주의와도 성격을 달리하였다. 그들의 시에서는 대개 삶의 절박한 충동과 갈망의 빛이 떠돌았다. 서정주의 다음과 같은 작품은 전형적인 예라 하겠다. 여기에 등장하는 문둥이는 꿈틀거리는 삶의 욕구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펼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울부짖는 처절한 모습을 보여 준다.



해와 하늘빛이

문둥이는 서러워


보리밭에 달 뜨면

애기 하나 먹고


꽃처럼 붉은 울음을 밤새 울었다.

〈서정주, ‘문둥이’〉

‘자연파(청록파)’는 이에 비해 비교적 안정된 목소리를 가지고 있다. 그들은 삶의 고뇌 자체를 노래하기보다는 고뇌에 가득찬 세계를 벗어나 평화로운 자연 속에서 이상적 삶의 모습을 발견하려는 태도를 보여 주었다. 물론 그것은 현실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작품 속에만 나타나는 이상향이었다. 그들의 시집이 된 ‘청록(靑鹿)’ 즉, 푸른 사슴이라는 것부터가 실재하지 않는 상상적 동물이었다. 그런 가운데서 개인적인 특성의 차이를 지적한다면, 조지훈은 불교적인 분위기와 전통적인 것에의 향수가 짙었고, 박목월은 향토적인 자연의 세계를 즐겨 그렸으며, 박두진은 성서적인 상상력을 바탕으로 모든 갈등이 해소된 자연의 세계를 희구하였다고 하겠다.


4) 어둠 속의 별들, 이육사‧윤동주

이와 같은 우리 시의 흐름이 계속되는 동안에도 일제의 압박은 나날이 억세어져 갔다. 더욱이 일제가 1930년대에 만주와 중국 대륙에서 전쟁을 벌인 데 이어 1940년대에는 태평양 전쟁을 일으키자 그들의 식민지 통치 정책은 더욱 가혹하여져 갔다. 그들은 우리 민중들의 삶을 억압하였을 뿐 아니라, 강압적 통치를 완성하기 위하여 우리말 사용을 금지하고 민족 문화를 말살하며 많은 지식인, 문학인들에게 이에 대한 협력을 강요하였다. 이에 따라 적지 않은 시인, 작가, 지식인들이 치욕적인 친일 행각을 벌였다. 그들은 한국인 학생들에게 일제를 위해 학도병으로 출정할 것을 권유했고, 침략 전쟁을 찬양하는 시를 쓰기도 했다.

그러나, 이 어두운 시대에도 양심을 지키며 민족의 굽힐 수 없는 의지를 노래한 시인들이 있었다. 또, 아예 붓을 꺾고 숨어 버린 시인들도 있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중요한 인물로서 우리는 이육사와 윤동주를 생각하게 된다.

이육사는 시인이자 항일 투사로서 불굴의 의지와 웅장한 기상을 담은 시를 남겼다. ‘광야’, ‘청포도’, ‘절정’ 등과 같은 작품에 넘치는 의연한 기품과 시적 균형은 그가 굳센 투사였을 뿐 아니라 뛰어난 시인이었음을 알게 한다.

이육사가 남성적, 대륙적 기풍을 가졌음에 비하여 윤동주는 번민이 많은, 그러면서도 극도로 맑고 섬세한 심성을 가진 젊음이의 모습을 보여 준다. 그는 어두운 시대에 처하여서도 자신의 양심이 명령하는 바에 따라 순수하게 살아가고자 하는 내면의 의지를 노래하였다. 그 역시 이육사와 마찬가지로 해방이 되기 전 일제의 손에 옥사하였지만, 그 시혼은 시간의 간격을 넘어서 살아 있다.

※ 출처 : 김흥규, <한국 현대시의 이해와 감상>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