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개인의 번민과 사회 의식 : 1920년대

1920년대에 들어서자 여러 문학 동인지가 창간되고 다수의 시인들이 등장하면서 우리 현대시는 본격적인 성장 단계에 접어들었다. 이미 1919년에 창간된 동인지 ꡔ창조ꡕ에 이어 ꡔ폐허ꡕ(1920년 창간), ꡔ장미촌ꡕ(1921년 창간), ꡔ백조ꡕ(1922년 창간) 등이 나왔고, 이와 함께 본격적인 문학 잡지 ꡔ조선문단ꡕ(1924년 창간)과 종합 잡지 ꡔ개벽ꡕ(1920년 창간) 등도 간행되어 문학 활동의 터전을 넓혔다.

이러한 시인과 발표 지면이 많았던 만큼 이 시기의 시는 경향도 다양해지기 시작하였다. 그 중에서 특히 두드러진 집단적 현상으로는 ① 우울한 시대 의식과 개인의 절망을 노래한 낭만주의적 경향, ② 사회적 모순에 대한 투쟁을 내세운 경향파-프로문학의 입장, ③ 한동안 소홀히 되었던 전통적 시 형식인 시조을 현대적으로 되살리자는 운동 등을 들 수 있다.


1) 우울한 낭만주의

ꡔ창조ꡕ, ꡔ폐허ꡕ, ꡔ장미촌ꡕ, ꡔ백조ꡕ 등 1920년대 초기의 동인지를 중심으로 활동한 오상순, 황석우, 박종화, 홍사용, 이상화, 박영희, 변영로, 김억 등 시인들은 대체로 비슷한 주제와 분위기의 시를 썼다. 그들의 시에는 ‘어둠, 죽음, 잠, 이별, 눈물, 탄식’ 등의 어휘들이 자주 등장하였으며, 동사로는 ‘쓰러지다, 파묻히다, 떨어지다, 잠기다, 무너지다’ 등 파멸과 침체를 뜻하는 말들이 많았음을 보게 된다. 그들의 시에 담긴 주제를 간추리면, 현실의 세계는 더럽고 속된 타락의 물결로 가득 차 있으며, 이상적인 삶은 이로부터 벗어난 상상의 공간이나 죽음의 세계에서만이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들의 경향을 낭만주의-특히, 우울하고 절망적인 낭만주의-라고 할 수 있다. 그들 중 일부 시인들은 상징주의(김억, 황지우)나 퇴폐주의(오상순) 등을 표방하기도 하였지만, 그것들도 넓은 의미의 낭만주의적 태도를 벗어나는 것은 아니었다. 이상화의 ‘나의 침실로’, 홍사용의 ‘나는 왕이로소이다’, 박종화의 ‘흑방비곡(黑房悲曲)’ 등이 이 흐름의 대표작으로 알려져 있다. 이 계열에 속하는 작품 중 일부를 잠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꿈 속에 잠긴 외로운 잠이

현실을 떠난 ‘빛의 고개’를 넘으려 할 때

빛에 무너진 잠의 님 없는 집은

가엾이 깊이 깊이 무너지도다


그리우는 그림자를 잠은 안고서

꽃피는 꿈길을 달아날 때에

바람에 불붙는 잠의 집 속에

‘생(生)의 고통’은 붉게 타도다.


〈박용희, ‘꿈의 나라로’(백조 창간호, 1922) 중에서〉


이와 같은 우울한 낭만주의는 당시의 지식 청년들이 지녔던 이상과 암담한 현실 상황 사이의 절망적 분열을 반영한 것이다. 그들은 당대의 상황에 대해 적극적으로 맞서기보다는 개인적 번민과 절망감을 노래하는 데 힘을 기울였다.


2) 투쟁적 사회 의식의 대두

1920년대 초기의 시인들이 이처럼 개인의 고통, 절망을 노래하는 데 몰두하는 동안 한편에서는 새로운 문학적 조류가 형성되면서 현실의 모순에 대한 투쟁 정신과 시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주장이 나타났다(1924). 그 선구적 인물은 김기진이었으며, ꡔ백조ꡕ 동인 시절에 우울한 낭만주의자였던 박영희가 여기에 열렬히 가담하고, 이상화도 시풍이 바뀌어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같은 시를 썼다. 김기진 등은 지난날의 문학이 민중의 경험을 노래하지 못하고 지식인들의 개인적 고민만을 감상적으로 다룬 점을 비판하였다.

그 이듬해인 1925년에 신경향파(新傾向派)가 조직화된 단체인 카프(KAPF) 즉 ‘조선프로레타리아 예술가 동맹’이 결성되면서 이러한 주장은 극도로 강경해졌다. 이에 따라 문학은 당연히 계급 투쟁에 봉사해야 한다는 이념적 요구가 압도하게 되었다. 카프라는 단체는 사회주의적 투쟁 이념을 절대적인 원칙으로 삼았던 만큼 그 요구 아래서 씌어진 작품들은 시에 필요한 구체적 경험과 갈등을 얻지 못하고 관념적인 흥분에 빠지는 일이 많았다.


3) 시조 부흥 운동

한편 이보다 조금 늦은 시기인 1926년 무렵부터 일부의 문학인들 사이에는 우리의 옛 시 형식 중에서 가장 풍부한 전통 양식인 시조를 현대적으로 되살리자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이 움직임은 한편으로는 일제의 지배 아래 점차 쇠퇴하여 가는 전통적 문화를 재인식하고 되살리자는 문화 운동의 일부분이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카프 계열의 문학인들이 주창한 계급 문학에 대하여 민족 문학의 방향을 내세우고자 한 움직임이었다. 그 중심 인물은 최남선, 이병기, 이은상 등이었다. 그러나, 이 운동은 성공적이라 할 만한 작품들을 얼마간 내기는 하였으나, 시조가 현대시의 일부로서 충분한 가능성이 있는지에 관하여는 논쟁의 여지를 남긴 채 한정된 수의 시인들에게만 받아들여졌다.


4) 김소월과 한용운

위에서 살핀 조류들이 1920년대의 우리 시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 현상이기는 하지만 이것만으로 당시의 시적 성과를 말할 수는 없다. 문학사에서는 어떤 사조나 운동에 속하지 않으면서도 탁월한 성과를 이룬 이들이 흔히 있기 때문이다. 1920년대의 대표적 시인인 김소월과 한용운이 바로 그 본보기이다.

김소월은 1934년에 세상을 떠났으나 1920년대 초에서 중엽까지 가장 많은 활동을 했다. 그는 민요의 맛과 가락을 살린 시를 즐겨 써서 ‘민요 시인’이라고도 불리었으며, 불행한 생애를 살면서 삶의 외로움과 고통 그리고 슬픔을 노래한 작품들을 많이 남겼다. 그 중에는 저급한 감상적 작품들도 더러 있지만, 그의 뛰어난 운율 감각, 섬세한 말씨, 날카로운 시적 감수성 등은 현대 서정시의 한 전형이라고 할 만하다.

한용운은 「님의 沈黙」(1926)이라는 시집 한 권으로 1920년대 뿐 아니라 우리 현대시에서 가장 높은 경기를 이루었다. 승려이며 사상가이자 시인이었던 그는 당시의 암담한 시대 상황을 노래하면서도 절망에 빠지지 않고, 심오한 종교적 정신과 시대 의식이 결합된 명작을 남겼다.

※ 출처 : 김흥규, <한국 현대시의 이해와 감상>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