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현대시에로의 진전 : 1910년대
1910년대에 들어서서 우리 현대시에는 두 가지 주목할 만한 변화가 일어났다. 하나는 앞에서 보았던 사회 비판적 이념과 계몽 의식을 가진 작품들이 사라진 점이고(1910년의 국권 상실 이후로 이러한 것은 떳떳하게 나타날 수 없었으므로), 다른 하나는 신체시에서 실마리가 보였던 자유시의 지향이 상당히 다듬어진 서정시의 형태로 전개된 점이다.
그러한 작품들을 우리는 동경의 한국 유학생 기관지였던 ꡔ학지광(學之光)ꡕ(1914,5년 무렵)과 한국 최초의 주간 문학 잡지인 ꡔ태서문예신보(泰西文藝新報)ꡕ(1918)에서 볼 수 있다. 이들의 흐름을 이어 뚜렷한 모습으로 등장한 것이 주요한의 「불노리」(ꡔ창조ꡕ창간호, 1919)이다.(종래에는 「불노리」가 최초의 근대 자유시라고 하여 왔으나, 적어도 시대적 선후 관계만을 따진다면 그것이 최초라고는 할 수 없음이 근간에 새로이 나타난 자료에서 밝혀졌다. 다만 ‘불노리’가 이 시기의 자유시를 대표할 만한 인상깊은 작품이어서 중요성이 크다는 점은 인정할 수 있을 것이다.)
침묵의 지배를 따라
고요히 나는 혼자 있노라
야반(夜半)의 울림종(鍾) 소리에
내 가슴은 울리며 반향(反響) 나도다
나의 영(靈)이여!
너는 무엇을 바라느냐?
나의 육(肉)이여!
너는 무엇을 바라느냐?
〈돌샘, ‘이별’(학지광 3호, 1914) 중에서〉
이와 비슷하거나 좀더 나은 수준의 자유시는 ꡔ태서문예신보ꡕ에도 김억, 황석우의 작품으로 여러 편 나타난다. 주요한의 「불노리」는 그러므로 신체시 이후의 공백 상태에서 갑자기 나온 것이 아니라, 1910년대의 이와 같은 흐름 속에서 서정적 자유시에로의 진전이 이룩된 결과 가능하였던 것이다.
※ 출처 : 김흥규, <한국 현대시의 이해와 감상> 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