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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 <낯선 시의 모든 것>, 꿈을 담는 틀





황지우, <늙어가는 아내에게>
 


내가 말했잖아

정말, 정말, 사랑하는, 사랑하는, 사람들,

사랑하는 사람들은,

너, 나 사랑해?

묻질 않어 1)

그냥, 그래,

그냥 살지

그냥 서로를 사는 게야 2)

말하지 않고, 확인하려 하지 않고,

그냥 그대 눈에 낀 눈곱을 훔치거나

그대 옷깃의 솔밥이 뜯어주고 싶게 유난히 커 보이는 게야 3)

생각나?



지금으로부터 14년전, 늦가을, 4)

낡은 목조 적산 가옥이 많던 동네의 어둑어둑한 기슭, 5)

높은 축대가 있었고, 흐린 가로등이 있었고

그대의 집, 대문 앞에선

이 세상에서 가장 쓸쓸한 바람이 불었고 6)

머리카락보다 더 가벼운 젊음을 만나고 들어가는 그대는 7)

내 어깨 위의 비듬을 털어 주었지 8)

그런거야, 서로를 오래 오래 그냥, 보게 하는 거

그대가 와서, 참으로 하기 힘든, 그러나 속에서는

몇 날 밤을 잠 못자고 단련시켰던 뜨거운 말,

저도 형과 같이 그 병에 걸리고 싶어요 9)



그대의 그 말은 에탐부톨과 스트렙토마이신을 한 알 한 알 10)

들어내고 적갈색의 빈 병을 환하게 했었지 11)

아, 그곳은 비어있는 만큼 그대 마음이었지

너무나 벅차 그 말을 사용할 수 조차 없게 하는 그 사랑은 12)

아픔을 낫게 하기보다는, 정신없이,

아픔을 함께 앓고 싶어하는 것임을 13)

한밤, 약병을 쥐고 울어버린 나는 알았지

그래서, 그래서, 내가 살아나야 할 이유가 된 그대는 차츰 14)

내가 살아갈 미래와 교대되었고 15)



이제는 세월이라고 불러도 될 기간을 우리는 함께 통과했지 16)

살았다는 말이 온갖 경력의 주름을 늘리는 일이듯 17)

세월은 넥타이를 여며주는 그대 손끝에 역력하지 18)

이제 내가 할 일은 아침 머리맡에 떨어진 그대 머리카락을

침 묻힌 손으로 집어내는 일이 아니라 19)

그대와 더불어, 최선을 다해 늙는 일일 것이야 20)

우리가 그렇게 잘 늙은 다음 21)

힘 없는 소리로, 임자, 우리 괜찮았지?

라고 말할 수 있을 때, 그때나 가서

그대를 사랑한다는 말은 그때나 가서

할 수 있는 말일 거야 22)




어구 풀이


 
1) 묻질 않어 : 확인하지 않는 사랑 - 말없는 신뢰

  2) 그냥 서로를 사는 게야 : 서로 하나가 되어 의지하며 살아감

  3) 그냥 그대 눈에 낀 눈곱을 훔치거나 / 그대 옷깃의 솔밥이 뜯어주고 싶게 유난히 커 보이는 게야 - 사소하지만 사랑과 배려에서 우러나오는 행동, 소박한 사랑

  4) 지금으로부터 14년전, 늦가을, - 과거 회상의 시작

  5) 적산 가옥 - 해방 후 일본인들이 물러가면서 남겨 놓고 간 가옥

  6) 이 세상에서 가장 쓸쓸한 바람이 불었고 - 과거의 감정을 되살림

  7) 머리카락보다 더 가벼운 젊음 - 스스로를 머리카락보다 가볍다고 표현함, 솔직한 자기 부정의 표현

  8) 내 어깨 위의 비듬을 털어 주었지 - 상대방의 누추한 모습을 감싸안는 사랑의 표현

  9) 저도 형과 같이 그 병에 걸리고 싶어요 - 고통을 함께하고 싶다는 소망, 진심 어린 사랑의 고백 (※ ‘형’ : 과거 주로 대학 선후배 사이에서 사용했던 ‘오빠’의 다른 말)

  10) 에탐부톨과 스트렙토마이신 - 결핵 치료제

  11) 적갈색의 빈 병을 환하게 했었지 - 약을 꼬박꼬박 먹게 함

  12) 너무나 벅차 그 말을 사용할 수 조차 없게 하는 그 사랑 - 사소한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사랑이 깊고 큼

  13) 아픔을 함께 앓고 싶어하는 것 - 고통마저도 함께하고 싶은 마음이 진정한 사랑이라는 깨달음

  14) 내가 살아나야 할 이유 - 사랑을 이루기 위해 살고 싶다는 욕망을 가짐

  15) 내가 살아갈 미래와 교대되었고 - 인생의 동반자가 됨

  16) 이제는 세월이라고 불러도 될 기간을 우리는 함께 통과했지 - 오랜 세월 동반자로 함께 살아옴

  17) 온갖 경력의 주름 - 다양한 경험

  18) 세월은 넥타이를 여며주는 그대 손끝에 역력하지 - 세월 속에서 늙어 가는 아내의 모습

  19) 이제 내가 할 일은 아침 머리맡에 떨어진 그대 머리카락을 / 침 묻힌 손으로 집어내는 일이 아니라 - 늙음을 외면하거나 회피하지 않고 함께 받아들임

  20) 그대와 더불어, 최선을 다해 늙는 일일 것이야 - 지금껏 살아온 세월처럼 신뢰와 사랑을 잃지 않고 동반자로 살아가는 일

  21) 우리가 그렇게 잘 늙은 다음 - 온 삶을 함께한 뒤에

  22) 그대를 사랑한다는 말은 그때나 가서 / 할 수 있는 말일 거야 - 사랑 고백을 미래로 미룸, 우회적인 사랑의 고백




핵심 정리

- 갈래 : 자유시, 서정시

- 성격 : 고백적, 회고적

- 주제 : 삶을 함께하는 동반자에 대한 신뢰와 사랑

- 표현상의 특징 : 꾸밈없는 솔직한 고백이 잔잔한 감동을 불러일으킴




이해와 감상

  이 시는 함께 젊음을 보내고 오랜 세월 동반자로 살아온 아내에게 사랑한다는 말보다 더 깊은 사랑의 진심을 표현하고 있다. 늙어 가는 아내에게 전하는 화자의 꾸밈없는 고백에서 사랑하느냐의 물음조차 불필요할 정도로 일심동체가 되어 버린 부부의 사랑이 감동적으로 전달되고 있다.




시상 전개

- 1연 : 진정한 사랑에 대한 화자의 생각

- 2~3연 : 젊은 날 아내의 사랑을 돌이켜 봄

- 4연 : 앞으로 아내와 살아갈 삶에 대한 다짐과 애정의 표현





황지우 [黃芝雨, 1952. 1. 25~]  (※인물 정보 출처 : 네이버 백과 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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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시인. 작품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를 통해 전통시와는 전혀 다른 형식과 내용을 표현하였으며 기호, 만화, 사진, 다양한 서체 등을 사용하여 시 형태를 파괴함으로써 풍자시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본명 황재우
활동분야 시인
출생지 전남 해남
주요수상 김수영문학상(1983) 등
주요저서 《예술사의 철학》 《큐비즘》 《뼈아픈 후회》(1993)
본문

1952년 전라남도 해남에서 태어나 1968년 광주제일고교에 입학했다. 1972년 서울대학교 미학과에 입학하여 문리대 문학회에 가입, 문학활동을 시작했다. 1973년 유신 반대 시위에 연루, 강제 입영하였다.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에 가담한 혐의로 구속, 1981년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제적되어 서강대학 철학과에 입학했다. 1985년부터 한신대학교에서 강의하기 시작하였고 1988년 서강대학교 미학과 박사과정에 입학하였다. 1994년 한신대학교 문예창작과 교수로 있다가 1997년부터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교수로 있다.

1980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연혁(沿)》이 입선하고, 《문학과 지성》에 《대답없는 날들을 위하여》를 발표, 등단하였다.  김수영문학상을 수상한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1983)는 형식과 내용에서 전통적 시와는 전혀 다르다. 기호, 만화, 사진, 다양한 서체 등을 사용하여 시 형태를 파괴함으로써 풍자시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극단 연우에 의해 연극으로 공연되었다. 《나는 너다》(1987)에는 화엄()과 마르크스주의적 시가 들어 있는데 이는 스님인 형과 노동운동가인 동생에게 바치는 헌시이다. 또한 다른 예술에도 관심이 많아 1995년에 아마추어 진흙조각전을 열기도 하고 미술이나 연극의 평론을 쓰기도 하였다.

게눈 속의 연꽃》(1991)은 초월의 가능성과 한계에 대해 노래했으며《어느날 나는 흐린 주점에 앉아 있을 거다》는 1999년 상반기 베스트셀러였다. 《어느날 나는 흐린 주점에 앉아 있을 거다》는 생의 회한을 가득 담은 시로 대중가사와 같은 묘미가 있는 시집이다. 이 시집에 실려 있는 《뼈아픈 후회》로 김소월문학상을 수상했고 시집으로 제1회 백석문학상을 수상했다.

그의 시는 '시 형태 파괴'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정치성, 종교성, 일상성이 골고루 들어 있으며 시적 화자의 자기 부정을 통해 독자들에게 호탕하되 편안한 느낌을 준다. 또한 1980년대 민주화 시대를 살아온 지식인으로서 시를 통해 시대를 풍자하고 유토피아를 꿈꾸었다.  

그 밖에 《예술사의 철학》 《큐비즘》등의 저서가 있고, 《겨울 나무로부터 봄 나무에로 》(1985), 《저물면서 빛나는 바다》(1995), 《등우량선》(1998) 등의 시집이 있다.





관련 문제


1. 시적 화자? ▷
‘나’(아내에게 사랑을 전하는 이)



2. 시적 상황? ▷ 늙어 가는 아내에게 말보다는 함께 늙어 가는 과정에서 느껴지는 무언의 사랑이 더 절실한 것임을 말함


3. 정서/태도 ▷ 진솔함



4. 이 시에서 처음 과거 회상이 시작되는 부분을 찾아 그 첫 어절을 쓰시오.

  
  ▷
지금으로부터


5. 이 시에서 화자가 아내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아끼려 하는 이유를 한 문장으로 서술하시오.

  
  ▷
화자와 아내의 사랑은 사소한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깊고 큰 것이므로 이를 삶 속에서 증명하고자 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