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자식들에게  -  김광규
 위험한 곳에는 아예 가지 말고
 의심받을 짓은 안 하는 것이 좋다고
 돌아가신 아버지는 늘 말씀하셨다.
 그분의 말씀대로 집에만 있으면
 양지바른 툇마루의 고양이처럼
 나는 언제나 귀여운 자식이었다.
 평온하게 살아가는 사람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사람
 아무 흔적도 남기지 않는 사람
 그분의 말씀대로 살아간다면
 인생이 힘들 것 무엇이랴 싶었지만
 그렇게 살기도 쉬운 일이 아니다.
 수양이 부족한 탓일까
 태풍이 부는 날은
 집안에 들어앉아
 때 묻은 책을 골라내고
 옛날 일기장을 불태우고
 아무 것도 남기지 않기 위해
 자꾸 찢어버린다.
 이래도 무엇인가 남을까
 어느 날 갑자기 이 짓을 못하게 되어도
 누군가 나를 기억할까
 어쩌면 그러기 전에 낯선 전화가
 울려 올지도 모른다.
 지진이 일어나는 날은
 집에만 있는 것도 위험하고
 아무 짓을 안 해도 의심 받는다.
 조용히 사는 죄악을 피해
 나는 자식들에게 이렇게 말하겠다
 평온하게 살지 마라
 무슨 짓인가 해라.
 아무리 부끄러운 흔적이라도
 무엇인가 남겨라.



▷ 서울시교육청 해제 : 김광규,「나의 자식들에」

화자는 과거 아버지가 자식들에게 했던 말씀을 떠올린다. 바깥세상(‘태풍/지진’)이 험하므로 항상 조심하라는 아버지 말씀대로 살다보니 자신은 너무도 바깥세상을 모른 채 갇혀 그저 길들여진 삶(‘양지바른 툇마루의 고양이’)을 살아왔다고 자책한다. 그래서 화자는 자식들에게 조용히 사는 것, 즉 현실에 안주하며 사는 것이 ‘죄악’이라며 그렇게 살지 말라고 당부하겠노라며 조용히 고백한다.


▷ 관련 기출 문제 : (2008 고1 9월 전국모의고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