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미당기(김태자전)
19세기 후반에 서유영(徐有英)이 지은 고전소설. 국·한문 필사본. 이본으로는 〈육미당기〉 6종과 〈김태자전 金太子傳〉 7종이 있다. 〈육미당기〉는 서울대학교 도서관 가람문고(1877년, 3권 3책)와 양재연(梁在淵) 소장의 한문필사본(〈보타기문 普陀奇聞〉 3책 중 1책)이 있다. 한글필사본으로는 단국대학교 율곡기념도서관 나손문고본(구 김동욱 소장본, 3권 3책본과 낙질본 1본) 2본과 유구상(柳龜相)(전 8책 중 7책)·김기동(金起東)(3권 3책) 소장본이 있다.
〈김태자전〉은 〈육미당기〉의 번역 축약본인데 서울대학교 도서관 가람문고(4권 4책)와 서울대학교 도서관(1914년∼1915년간에 필사, 3권 3책), 박순호(낙질, 권4 중의 1권)가 각각 소장한 한글필사본이 있다. 1915년 유일서관에서 간행한 한글 활자본, 그리고 1926년 경성서적조합에서 발행한 활판본도 전한다.
신라 태자 김소선(金簫仙)은 부왕의 병을 고치기 위하여 남해 보타산에 가서 죽순을 가지고 오다가 이복형 세징(世徵)의 습격으로 죽순을 빼앗기고 실명하여 섬에 혼자 남게 된다. 그때 유구왕 백문현(白文賢)이 중국으로 가던 길에 소선을 구출하여 딸 백소저와 약혼시킨다. 백문현이 간신의 참소로 유배를 가고 소선은 집을 나와 방황한다. 소선은 퉁소 솜씨 덕택으로 임금의 총애를 받게 되고 옥성공주와 가까이 지내게 된다. 고국의 모후가 기르던 기러기가 편지를 전하자 소선은 기뻐서 눈을 뜨고 부마가 된다.
한편 백소저는 남장을 하고서 과거에 응시하여 장원급제하고 한림학사가 된다. 토번의 침략으로 소선이 출정하였다가 감금당하자 백소저가 원수가 되어 구출한다. 백소저가 개선하고 자신의 신분을 밝히자 임금은 그를 금성공주로 책봉하여 소선의 둘째부인이 되게 한다. 소선이 부인들과 함께 고국에 돌아오자 세징의 죄악이 탄로나고 부왕이 극형에 처하고자 한다.
그러나 소선의 간청으로 세징의 형벌이 감해지고 세징은 착한 사람이 된다. 소선은 환국하여 금성공주와 함께 왜국의 침범을 물리치고 왜국의 서울인 강호까지 가서 왜왕의 항복을 받아낸다. 소선은 부왕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올라 선정을 베푼 뒤 부인들과 함께 보타산에 가서 승천한다.
〈육미당기〉는 불경 소재 〈선우태자전 善友太子傳〉과 그것을 소설화한 〈적성의전 翟成義傳〉을 여러 가지 다양한 소재를 이용해 발전시킨 작품으로 정치, 사회적으로 혼란한 현실에서 벗어나 갈등 없는 이상세계를 추구하려고 하였다. 서유영은 한직(閒職)에서 적막한 것을 달래기 위하여 이웃에서 책을 빌어 보고 그 중에서 지루하고 너저분한 것은 버리고 세상의 인심과 물정을 묘사한 감동을 주는 부분을 허구적으로 창작하였다고 한다.
조선 후기 가장 많은 인기를 모은 소설 중의 하나로서 구성이 치밀하고 규모가 방대하며 표현이 뛰어나다. 뿐만 아니라 여성 인물의 성격도 매우 개성적으로 창조되어 있어 고전소설 가운데 백미라고 할 수 있다.
〈선우태자전〉의 불교적 이념인 자비와 능력을 중시하고 효제충신 및 정의사회를 구현하려는 〈적성의전〉의 유교적 이념을 동시에 포용하여 합리적인 지도자상을 형상화하고 있다는 데 이 작품의 창작 의의가 있다. 〈삼한습유〉·〈옥루몽〉·〈옥수기〉 등 다른 작품의 화소(話素)도 수용한 흔적이 있어 19세기 소설 상호간의 교류를 파악하는 데도 중요한 사례가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