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현왕후(仁顯王后)전

  선시에 상이 인후를 폐출하시고, 희빈 장씨로 왕비를 책봉(冊封)하여 곤위(坤位)에 오르니, 궁중이 조하를 받게 하매 일궁이 중궁을 생각하고 슬퍼하여 장씨 참람함을 분앙하나, 조정에 어진 사람과 신하가 없으니 누가 감히 말을 하리요. 그윽이 원분을 품고 눈물을 머금어 조하를 마치매 희빈의 아비로 옥산 부원군을 봉하고, 빈의 오라비 장 희재로 훈련 대장을 제수하시니 일국이 한심히 여기고 법장과 기강이 풀어졌는 고로 위망을 기다리고 팔도의 인심이 산란하여 소설이 흉흉하니, 대개 예로부터 성제 명왕이라도 한번 참소를 듣거니와, 숙종 대왕 성신문무로도 장씨에게 지대도록 침혹하사 국체를 어지럽게 하심은 실로 의외라.

- 인현 왕후의 폐비, 장 희빈의 왕후 책봉

 이듬해 경오에 장씨의 생자로써 왕세자를 책봉하시니, 장씨 양양 자득하여 방약무인(傍若無人)하니, 이러므로 발악을 일삼아 비빈을 절제하며 궁녀를 엄형하여 포악한 말과 교만한 행지 불가형언이라. 희재는 밖으로 탁란(濁亂)하고 음험하여 팔동에 장난하되 감히 말할 이 없더라.

- 장씨 생자로 왕세자 책봉

이렇듯 삼사년을 지내매, 천운이 세화하여 고진감래(苦盡甘來)요 흥진비래(興盡悲來)라 하니, 부운(浮雲)이 점점 걷히매 태양이 밝은지라. 성총 점점 깨달으사 민후의 원억( 抑)하심을 아시고 장빈의 요악(妖惡)함을 짐작하사 의심이 가득하시오니, 기색이 전과 다르시고 소인과 간신이 후의 삼촌숙질을 다 안율(按律)하여지이다. 날마다 계사(啓辭)하되 마침내 불윤(不允)하시니, 이러므로 민씨의 일문이 보전하니라.(중략)

- 장 희빈의 간악함을 짐작함

 하르는 미음을 수차 진어하시고 좌우 시탕하는 궁녀를 돌아 보아 가라사대, "내 이제는 살지 못할 것이니, 너희 정성을 무엇으로 갚으리요. 너희 등은 내 삼년 후 각각 돌아가 부모 동생을 보고 인륜을 갖추아 살아 있다가 구천(九泉) 타일에 가서 지하(地下)에 모듬을 기약하리라."

- 인현 왕후가 궁녀에게 내린 하교

 후가 이 하교를 내리시니 좌우가 듣잡고 망극하여 일시에 낯을 가리와 체옵하며 능히 말을 대답지 못하더라. 후가 명하사 전각을 수소(修掃)하고 향을 피우고 궁인에게 붙들려 세수를 정히 하시고 새 의복을 입으시고 궁녀로 대전을 청하시니, 상이 들어오시매 후가 의상을 정돈하시고 좌우로 붙들려 앉아 계시니, 궁인들이 다 망극 슬픈 빛일레라.

천심이 당황하사 좌를 가까이 이루시고,

"어찌 이렇듯 실섭(失攝)하시느뇨."

후가 문득 옥루(玉淚)를 내리와 가라사대,

"신이 곤위에 거하여 성상 중은을 입음이 극진하니 한 할 바가 없사오되, 다만 슬하의 혈육이 없어 외롭고 성상 대은을 만분지 일도 갚삽지 못하옵고 도리어 천심을 불안케 하오며 오늘 종천 영결하오니 구천지하에 눈을 감지 못하리니, 복원 성상은 박명한 첩을 생각지 말으시고 백세 안강하소서."

상이 크게 슬퍼 용루 영락하여 가라사대,

"후가 어찌 이런 불길한 말씀을 하시느뇨."

하시고 말씀을 능히 일우지 못하사 용포 소매 젖으니 후가 정신이 황란하신 중에도 어찌 상의 슬퍼하심을 모르시리요. 눈물을 흘려 길이 한심 지시고 왈,

"성상은 옥체를 보중(保重)하사 돌아가는 마음을 편케 하소서."

세자와 왕자를 앞에 앉히시고 어루만지시며 후궁 비빈을 나오라 하사 가라사대,

"내 명운이 부족하여 육년 고초를 겪고 다시 성은이 망극하사 곤위에 올라 세자와 왕자의 충효로 여년을 마칠까 하였더니 오늘날 돌아가니 어찌 박명지 않으리요. 그대 등은 나의 박명을 본받지 말고 성상을 모셔 만수 무강하라."

영잉군이 차시 팔세라.

손을 잡으시고 슬퍼 왈,

"차이가 영특하여 내 지극 사랑하더니 그 장성함을 못보니 한이라."

- 인현 왕후의 유언과 숙종의 슬픔

하시고 비빈을 치우고 민공 형제와 조카를 인견하사, 오열 비창하신 심사를 참지 못하시니 민공 형제 등이 배복 오열하여 능히 말을 못하는지라. 상이 그 모양을 보시매 천심이 막히고 무너지는 듯하사 차마 보시지 못하더니, 상이 마음을 가지시고 친히 권하시니 후가 허희탄식하시고 두어 번 마시시니, 상이 친히 받들어 베개를 바로 하여 누이시니 이윽고 창경궁경춘전에서 승하하시니, 신사 추팔월 십사일 사시(신사 추팔월 십사일 사시)요, 복위 팔년이요, 춘추가 삼십 오세시라. 궁중에 곡성이 진동하여 귀신이 다 우는 듯 궁녀가 서로 머리를  부딪쳐 앙앙이 따르고자 하니, 하물며 상이 과도히 슬퍼하심을 측량하리요. 땅을 두드리며 방성 대곡하시니 용루가 비오듯 용포가 젖으시니 궁중이 차마 우러러 뵈옵지 못할레라. 조정과 사서인이 슬퍼함이 부모 친상에서 더하니 후의 숙덕 성행 곧 아니면 어찌 이대도록 하리요.

- 친정 식구와 속풀이 지켜보는 가운데 승하함.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요점 정리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연대 : 미상, 정조 때로 추정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작자 : 어느 궁녀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형식 : 수필(소설체)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문체 : 내간체(섬세, 우아하며 여성적이고, 유려한 문체)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주제 : 인현 왕후의 비극적 일생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의의 : '계축일기','한중록'과 함께 3대 궁중문학으로 꼽히고, '한중록'과 더불어 2대 궁중 사화의 쌍벽을 이루며, 장희빈의 성격이 전형적인 악인으로 인현 왕후의 선과 대조를 이루고, 그 중간에 고민하는 숙종의 성격이 표현되어 있다.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내용 연구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줄거리

 인현 왕후는 요조 숙녀의 자질을 갖춘 이상적인 여인상이었다. 왕후가 되어 양전 대비께 효양하고 주상께 내조하며, 비빈 궁녀들을 잘 거느리어 조야가 다 존경하나, 출산하지 못하자 종사를 잇기 위해 후궁을 간택하기를 원한다. 후궁 장 희빈이 왕자를 낳자 방자한 마음으로 왕후를 참소하며 폐비하게 하니 많은 중신이 간하다가 유배된다. 다시 소론에 의해 왕후가 복위된 후 병세가 위중하고 왕이 애써 위로하며 애통해 하지만 35세의 젊은 나이 승하하신다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선시 : 이에 앞서. 여기서는 숙종 15년 4월 23일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상 : 임금. 여기서는 숙종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폐출 : 벼슬을 떼고 내침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희빈 : 내명부의 한 직급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책봉 : 왕세자, 세손, 후 비빈들의 작위를 봉함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곤위 : 왕후의 자리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조하 : 조정에 나아가 왕께 하례하는 일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일궁 : 모든 궁중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중궁 : 왕후. 여기서는 인현 왕후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참람 : 분수에 넘치게 함부로 함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분앙 : 분하게 여겨 앙갚음할 마음을 품음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원분 : 원통하고 분함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제수 : 벼슬에 친거하는 절차를 밟지 않고 임금이 직접 관리를 임명함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법장 : 법률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기강 : 기율과 강령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위망 : 위태로와 망하려함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소설 : 떠들썩하게 시끄러운 소문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흉흉하니 : 인심이 몹시 어수선하니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성제명왕 : 거룩한 황제와 사리에 밝은 임금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참소 : 거짓으로 헐뜻어 남을 일러 바침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침혹 : 무엇을 몹시 좋아하여 정신을 잃고 거기에 빠짐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국체 : 나라의 체면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양양 : 득의하는 빛이 외모와 행동에 나타나는 모양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방약무인 : 제 세상인 듯이 버릇없이 행동하는 모양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엄형 : 엄한 형벌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행지 : 행동거지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불가형언 : 말로 다 형언하기 힘듦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탁란 : 사회나 정치가 흐리고 어지러움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음험 : 흉물스럽고 우악함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부운 : 뜬구름. 장씨 일파를 비유한 말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성총 : 임금[숙종]의 총명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인후 : 인현 왕후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원억 : 원통하게 누명을 씀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안율 : 법에 붙여 죄를 다스림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계사 : 죄를 의논하는 상주 문서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불윤 : 허락하지 아니함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진어 : 임금이 입고 먹는일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시탕 : 병에 약 시중하는일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구천 : 저승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타일 : 후일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모듬 : 모임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망극하여 : 임금이나, 어버이의 은혜가 워낙 커서 갚을 길이 없어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체읍 : 눈물을 흘리면서 슬퍼 옮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후 : 왕후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전각 : 임금이 거처하는 궁전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수소 : 먼지를 쓸고 물을 뿌림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옥루 : 왕후의 눈물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실섭 : 몸조리를 잘 하지 못함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성상 : 임금을 높여 이르는 말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종천 영결 : 죽어서 영원히 이별함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복원 : 웃어른에게 공손히 엎드려 원함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박명 : 팔자가 사나움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용루 : 임금의 눈물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황란 : 혼란하고 어지러움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보중 : 몸을 아끼어 중히 함.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인견 : 웃사람이 아랫사람을 불러 봄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오열 : 목이 메이록 욺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비창 : 슬프고 서운함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배복 오열 : 엎드려 목이 메도록 욺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선시에 상이  ∼ 생각하고 슬퍼하며 :
앞서(숙종 15년 4월 23일에) 숙종이 인현 왕후를 폐비시키고, 희빈 장씨를 왕비로 책봉하여 궁중의 신하들에게 나아가 하례토록 하매, 궁중의 모든 이들이 인현왕후를 생각하고 슬퍼하며.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이렇듯 삼사년을  ∼ 걷히매 태양이 밝은지라 :
이렇게 해서 삼사년을 지나니 하늘의 구름이 흘러가서, 고생이 끝나면 즐거움이 오고, 즐거움이 끝나면 슬픔이 온다고 하더니 뜬구름이 점점 걷혀서 태양이 밟게 비치는지라. 여기서 부운은 간신이고 태양은 숙종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내 이제는 살지 못할 것이니, ~ 구천 타일에 가서 지하에 모듬을 기약하리라 :
내 이제 살지 못할 것이니 너희들의 정성을 무엇으로 갚겠느냐 너희들은 내가 죽은 뒤에 3년상을 치르고 난 후에 각각 돌아가 부모, 동생들을 만나보고, 결혼을 하여 잘 살다가 죽어이 세상을 하직하거든 저승에 가서 지하에서 다시 만나기를 약속하리라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이해와 감상

  조선 후기 작자 미상의 전기체(傳記體) 소설. 궁중문학류의 일종으로, 숙종 당시의 궁중을 배경으로 왕가 일문에서 인현왕후가 겪어야 했던 생애를 소설체로 엮은 작품이다. 작자는 인현왕후를 모시고 있던 궁인이라는 설이 있으나, 최근의 연구로는 왕후 폐출에 반대하였던 박태보 ( 朴泰輔 )의 후예나 왕후의 친정 가문에서 지은 것라는 설이 유력하다.

 필사본으로 국립중앙도서관본 · 가람문고본 등 10여종이 있다. ‘ 인현왕후민씨덕행록(仁顯王后閔氏德行錄) ’ · ‘ 민 力 뎐덕 里 녹(閔中殿德行錄) ’ · ‘ 민 力 전긔(閔中殿記) ’ 등의 이칭으로도 불린다. 이본간의 차이점은 분량과 내용에서 두드러진다. 내용은 민유중 ( 閔維重 )의 딸인 주인공 민비가 출생하는 데서부터 숙종의 계비(繼妃)로 입궐하게 되어 숙종과 장희빈 ( 張禧嬪 ) 사이에서 겪은 파란만장한 사건들을 작품화한 것이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인현왕후는 한없이 어진 분이었으나 자녀를 얻지 못하게 되자 스스로 궁녀 장씨를 천거하여 숙종으로 하여금 후사를 보게 하였다. 그런데 아들을 낳게 된 장씨는 자신의 소생으로 세자를 책봉하고자 하여 갖은 모략으로 민비를 폐출시키고, 드디어는 세자책봉의 뜻을 이룬다. 연이어 자신도 정비 ( 正妃 )의 자리에 오르게 되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게 되자 장씨의 모진 인간성이 점점 드러나게 되고, 드디어 숙종은 어진 민비를 폐출시킨 잘못을 뉘우치게 된다. 이에 다시 민비를 복위시켜 정비의 자리에 앉힌다. 그리하여 다시 뒷전으로 물러앉게 된 장희빈은 갖은 모략과 무술(巫術)로 민비를 해치고자 하여 밤낮없이 계책을 꾸몄다.

 한편, 6년 동안이나 아무도 원망하지 않음은 물론 죄인을 자처하며 폐서인생활을 하였던 민비는 복위 후에도 건강을 되찾지 못한 채 7년 후 숙종이 매우 슬퍼하는 가운데 생애를 마감한다. 반면 장씨가 민비를 모해했던 일이 백일하에 드러나면서 장씨는 사약을 받게 된다.

 인현왕후의 덕행을 작품화한 이 소설은 파란만장한 사건이 흥미로워서일 뿐만이 아니라 일종의 교훈서로도 널리 읽혀져왔다. 국문학자료 및, 당시의 궁중풍속과 생활의식을 보여주는 귀중한 작품이다.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심화 자료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인현 왕후가 궁녀들을 모아 놓고 유언을 하는 장면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인현왕후전(仁顯王后傳)  

조선 후기 작자 미상의 전기체(傳記體) 소설. 궁중문학류의 일종으로, 숙종 당시의 궁중을 배경으로 왕가 일문에서 인현왕후가 겪어야 했던 생애를 소설체로 엮은 작품이다. 작자는 인현왕후를 모시고 있던 궁인이라는 설이 있으나, 최근의 연구로는 왕후 폐출에 반대하였던 박태보 ( 朴泰輔 )의 후예나 왕후의 친정 가문에서 지은 것라는 설이 유력하다.

필사본으로 국립중앙도서관본 · 가람문고본 등 10여종이 있다. ‘ 인현왕후민씨덕행록(仁顯王后閔氏德行錄) ’ · ‘ 민 力 뎐덕 里 녹(閔中殿德行錄) ’ · ‘ 민 力 전긔(閔中殿記) ’ 등의 이칭으로도 불린다. 이본간의 차이점은 분량과 내용에서 두드러진다. 내용은 민유중 ( 閔維重 )의 딸인 주인공 민비가 출생하는 데서부터 숙종의 계비(繼妃)로 입궐하게 되어 숙종과 장희빈 ( 張禧嬪 ) 사이에서 겪은 파란만장한 사건들을 작품화한 것이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인현왕후는 한없이 어진 분이었으나 자녀를 얻지 못하게 되자 스스로 궁녀 장씨를 천거하여 숙종으로 하여금 후사를 보게 하였다. 그런데 아들을 낳게 된 장씨는 자신의 소생으로 세자를 책봉하고자 하여 갖은 모략으로 민비를 폐출시키고, 드디어는 세자책봉의 뜻을 이룬다. 연이어 자신도 정비 ( 正妃 )의 자리에 오르게 되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게 되자 장씨의 모진 인간성이 점점 드러나게 되고, 드디어 숙종은 어진 민비를 폐출시킨 잘못을 뉘우치게 된다. 이에 다시 민비를 복위시켜 정비의 자리에 앉힌다. 그리하여 다시 뒷전으로 물러앉게 된 장희빈은 갖은 모략과 무술(巫術)로 민비를 해치고자 하여 밤낮없이 계책을 꾸몄다.

한편, 6년 동안이나 아무도 원망하지 않음은 물론 죄인을 자처하며 폐서인생활을 하였던 민비는 복위 후에도 건강을 되찾지 못한 채 7년 후 숙종이 매우 슬퍼하는 가운데 생애를 마감한다. 반면 장씨가 민비를 모해했던 일이 백일하에 드러나면서 장씨는 사약을 받게 된다.

인현왕후의 덕행을 작품화한 이 소설은 파란만장한 사건이 흥미로워서일 뿐만이 아니라 일종의 교훈서로도 널리 읽혀져왔다. 국문학자료 및, 당시의 궁중풍속과 생활의식을 보여주는 귀중한 작품이다.

≪ 참고문헌 ≫ 肅宗實錄, 燃藜室記述, 仁顯王后傳異本考(金東旭, 文理師大學報 창간호, 1959), 仁顯王后傳硏究(金用淑, 이조여류문학 및 궁중풍속의 연구, 1970), 仁顯王后傳硏究(朴堯順, 崇田語文學 1, 1972).(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희빈장씨(禧嬪張氏)  

    ? ∼ 1701(숙종 27). 조선 숙종의 후궁. 본관은 인동 ( 仁同 )이다. 역관 장현(張炫)의 종질녀이다. 어머니의 정부(情夫)였던 조사석 ( 趙師錫 )과 종친인 동평군 항(東平君杭)의 주선으로 궁녀로 들어가 숙종의 총애를 독차지했다.

1686년(숙종 12) 숙원 ( 淑媛 )이 되었다. 1688년 소의 ( 昭儀 )로 승진하고 왕자 균( 悠 : 뒤의 景宗)을 낳았다. 왕은 기뻐하여 세자로 봉하려 했다. 그러나 송시열 ( 宋時烈 ) 등 당시 정권을 잡고 있던 서인이 지지하지 않으므로 남인들의 원조를 얻어 책봉하려 했다.

이에 서인의 노론 · 소론은 모두 왕비 민씨(閔氏)가 나이가 많지 않으니 후일을 기다리자고 주장하였다. 숙종은 듣지 않고 1689년 정월에 균을 세자로 봉하고, 장소의는 희빈으로 승격했다. 이 때 송시열이 세자로 봉하는 것이 아직 이르다고 상소하였다. 왕은 이미 명호(名號)가 결정된 다음에 이런 의견을 말하는 것은 무슨 일이냐고 진노했다.

이에 남인 이현기 ( 李玄紀 ) · 남치훈(南致薰) · 윤빈 ( 尹彬 ) 등이 송시열의 상소를 논박하며 파직시켜 제주도로 유배하게 하고 다시 사사(賜死)하게 하였다. 그러나 송시열은 중로 정읍으로 이배(移配)되었다가 사약을 받았다.

이 밖에 서인의 영수들도 파직 또는 유배를 면하지 못했다. 반면에 남인의 권대운 ( 權大運 ) · 김덕원 ( 金德遠 ) 등이 등용되었다. 이 정권의 교체를 기사환국 또는 기사사화라고 한다.

이 해 5월에 민비를 폐하고 장희빈을 왕비로 삼으려 할 때 서인 오두인 ( 吳斗寅 ) · 박태보 ( 朴泰輔 ) 등 80여 명이 상소하여 이를 반대했다. 그러나 이들은 참혹한 형문을 받게 되니 이후 정국은 남인의 세상이 되었다.

기사환국 후 시간이 흐르면서 숙종은 폐비사건을 후회하게 되었다. 그러던 중 1694년 서인의 김춘택 ( 金春澤 ) · 한중혁 ( 韓重爀 ) 등이 폐비 복위운동을 꾀하다가 고발되었다. 이 때 남인의 영수요 당시 우의정이었던 민암(閔 睦 ) 등이 이 기회에 반대당 서인을 완전히 제거하려고 김춘택 등 수십 명을 하옥하고 범위를 넓혀 일대 옥사를 일으켰다.

이 때 숙종은 폐비에 대한 반성으로 옥사를 다스리던 민암을 파직하고 사사했으며, 권대운 · 목내선(睦來善) · 김덕원 등을 유배했다. 이어 소론 남구만 ( 南九萬 ) · 박세채 ( 朴世采 ) · 윤지완 ( 尹趾完 ) 등을 등용하고 장씨를 희빈으로 내렸는데 이것을 갑술옥사라고 한다. 또한, 이미 죽은 송시열 · 김수항 ( 金壽恒 ) 등은 복작(復爵)되고 남인은 정계에서 물러나게 되었다.

소론이 들어서고 남인이 물러날 때 장희빈의 오빠 장희재 ( 張希載 )가 희빈에게 보낸 서장(書狀) 속에 폐비 민씨에 관련된 문구가 있어 논쟁이 벌어졌다. 여러 사람이 장희재를 죽이자고 했으나 세자에게 화가 미칠까 염려하여 남구만 · 윤지완 등이 용서하게 했다.

그런데 왕비 민씨가 죽은 다음에, 장희빈이 취선당(就善堂) 서쪽에 신당 ( 神堂 )을 설치하고 민비가 죽기를 기도한 일이 발각되었다. 이 일에 관련된 희빈과 장희재는 살해되고 궁인(宮人) · 무녀와 그 족당 ( 族黨 )도 화를 입었다. 이것을 무고(巫蠱)의 옥(獄)이라고 한다.

이 때 장희빈에 대해 관대한 태도를 취한 남구만 · 최석정 ( 崔錫鼎 ) · 유상운 ( 柳尙運 ) 등 소론의 선비들도 몰락하고 다시 노론이 득세하였다. 숙종은 이후 빈(嬪)을 후비(后妃)로 승격하는 일을 없애는 법을 만들었다. ≪ 참고문헌 ≫ 肅宗實錄, 燃藜室記述, 仁顯王后傳. (자료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